여행과 답사/불문사 대마도답사

불문사 대마도답사(5完) 지장순례길을 걷고 한국전망대를 거쳐 한국으로........

북쪽의완행열차 2018. 12. 30. 15:37

앞에서 계속됩니다. 이번 편에 끝내려고 하니 스크롤과 데이터의 압박이 있더라도 다소 이해바랍니다.



50번과 51번은 약사여래가 나란히 있다.


52번인 11면관세음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57번은 아미타여래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에 빨간 벽돌호코라에는......


56번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55번은 도대체 누구세요??? 그리고 53, 54번은 어디 계세요??? 한참 찾던 중에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 들어와서........


같이 최후미를 이루고 있던 선생님들께서 53번 아미타여래와 54번 부동명왕 사이에 계셨다. 다시 봐도 불문사의 여선생님들은 진짜 보살이라는 명칭에 걸맞게.....(뒷말은 할많하않)


히타카츠와 하카타를 연결하는 선박으로 딱봐도 오래된 티가 난다. 아니나다를까 찾아보니 1983년에 건조되었다고 한다ㄷㄷㄷ


대마도가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엄연히 일본땅이기에 이 곳의 사람들 또한 일본 내의 큰 도시를 거점으로 하는데 나가사키현 쓰시마시 임에도 불구하고 하카타(후쿠오카)를 생활권으로 하고 있다. 1편에 등장했던 이즈하라-이키섬-하카타 여객선과 마찬가지로 히타카츠에서도 1일 1회 하카타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한다. 한가지 특징으로는 船首를 들어서 화물을 취급한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고 한다.


55번은 대통지승여래라고 한다. 일본은 한국보다 불보살과 여래의 종류가 많은 듯 하다.


58번은 자세히는 안나왔지만 천수관세음이라고 한다.


59번은 약사여래인데....... 웬일로 노천이 아닌 호코라에 모셔놨다. 그것도 대궐과 같은 구조의......


60번은 비로자나불로 알려진 대일여래라고 한다.


61번도 대일여래인데........


62번은 누구신지요??? 아시는 분은 제보 바랍니다.


63번은 동쪽을 지키는 사천왕인 다문천왕으로 알려진 비사문(毘沙門)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일본의 룸싸롱(?) 가운데 비사문이라는 이름을 한 가게가 있다고 들은 바가 있는데 그 비사문이 혹시 이 분이신가????


64번은 아미타여래이신데..... 어째 대접이 조금 안습하다.....


65번은 십일면관세음


가까이 계신 분이 66번 천수관세음, 멀리 계신 분이 67번 약사여래다. 그리고 뒤에 보이는 곳이 히타카츠항의 일부로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히타카츠 국제부두가 바로 내려다 보였다.


68번 아미타여래 널찍한 호코라를 혼자 차지하고 계신다.


69번은 관세음보살. 사진에는 배가 흐릿하게 나왔지만 가까이 있는 배가 부산행 오로라호(?)이다.


70번은 설명이 잘려서 馬로 시작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자세한 점을 모르겠다.


71번은 천수관세음...... 이쯤되면 이 곳의 주불이 관세음과 약사여래라고 생각된다.


72번은 비로자나불로 알려진 대일여래. 시멘트 호코라 색깔에 묻힐까봐 일부러 앞치마를 둘러놓은 거 같다.


73번은 석가여래.... 석가여래도 관세음이나 약사만큼은 아니지만 은근히 많은 편이었다.


74번은 약사여래......


75, 76, 77번은 아예 한 곳에 같이 모셔놨다.


78, 79, 80번도 마찬가지로 같이 모셔놨다. 이 말은 즉 그만큼 장소가 좁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별도의 설명을 찍을 각이 나오지 않았지.........


81번은 천수관세음을 보니 이제 한바퀴 다 돌았다는 점이 실감이 난다.


82, 83번. 이 곳도 불보살을 같이 모셔놨다.


84번은 11면관세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여서 그런지 나름대로 구색은 갖추어 놨다.


85번은 聖관세음이라고 한다. 이 쯤 되면 일본의 관세음신앙에 대해 한 번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호코라가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서 제일 완벽한 편이었다.


86번은 11면관세음. 이쯤되면 지장순례길이 아닌, 관세음 약사순례길이라 해도 될 정도로 두 불보살의 비중이 높았다.


그래도 초입에 위치해서 그런지 공물의 양이 은근히 많은 편이다.


87과 88번은 찾다 못찾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곳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의 해신당에 해당하는 곤피라와 에비스를 모신 신사라고 했다.


어찌되었던 간에 완주를 하긴 했지만 이미 너덜너덜한 상태에서 땀을 한바탕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사진의 계단을 내려와서


드디어 마지막 지점에 도착했다. 같이 다녔던 선생님들 끼리 한 장 찍어드렸다. 이 분들 아니었으면 아마 나는 지금 여기서 글을 남기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지장순례길의 마지막은 곤피라에비스신사로 끝이 났다. 불교와 일본 전통인 신토가 어우러진 모습이 이색적이다. 마치 한국 사찰 내에 산신각이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버스로 돌아가니 마지막 조를 격하게(?)반겨줬지만 한편으로는 젊은데 불구하고 저칠체력으로 인해 기다리게 해서 죄스러움마저 들었다.


처절한(?)지장순례길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간 곳은 한국이 보인다는 한국전망대였다. 그리고 그 곳의 뒤에는 조선국 역관사 순난비가 있다.


조선국 역관사 순난비. 1703년 어느날, 부산을 출발해서 대마도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은 역관들을 기리는 일종의 추모비라 할 수 있다.


이 비석은 앞서 말했듯이 1703(숙종 29)년 음력 2월 5일에 발생한 풍랑으로 당시 최고의 엘리트였던 역관 113명이 빠져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에는 [일본(日本) 도해선(渡海船)이 침몰하여 역관(譯官) 한천석(韓天錫) 등 1백 13명이 모두 빠져죽었는데, 임금이 호조(戶曹)에 명하여 구휼(救恤)하는 은전을 별도로 거행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사고 발생은 5일인데 19일에 기록된 것으로 봐서 당시 부산에서 한양까지 소식이 전달되는데 2주 정도 걸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집어삼킨 대한해협. 건너편에 아스란히 보이는 곳이 한국이다.


원래 사진 보정은 잘 안하지만 위의 사진에서 한국이 잘 안보여서 일부러 보정을 줬다.


참고로 겨울 추운 날(1~2월)에 가면 부산의 건물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잘 보인다고 한다.


이 날, 풍랑주의보가 걸려서 한국에 귀국하지 못했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참고로 이게 2016년 1월에 찍은 사진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본을 보면 이렇게 보인다고 한다. 단, 부산에서는 잘 안보인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보정을 진하게 적용한 사진. 그나마 땅의 윤곽만 보일 뿐이다. 위의 사진과 이 사진은 같은 사진이며, 모두 거제 지심도에서 12월 29일에 찍은 사진이다.


바다 너머로 지려고 하는 태양. 이제 한국에 갈 일만 남았다.


그리고 조용해 보이는 이 곳이 임진왜란 직전에 왜군들이 총집결한 곳이라고 한다.


이제는 정말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일본으로 상륙할 때는 이즈하라로 했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히타카츠에서 출발한다. 이 날이 일요일이고 4시가 임박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1박2일간 발이 되어준 버스와 기사님께 고생했다고 인사하고 출국수속을 받고 항구로 들어가니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이 때 부산행 비틀과 코비 그리고 오션플라워가 10~20분 간격으로 출항을 하는, 그야말로 진풍경(?)이 펼쳐졌고 어김없이 지각생도 발생했다. 그리고 16시 30분, 부산을 향해 출항을 하면서 일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이 때 처음에는 순항을 하나 싶던만 이내 파도가 세져서 배가 제법 울렁거렸다. 덕분에 실신한 상태로 있다가 눈떠보니 부산도착....... 같이 갔던 선생님들과의 인사를 끝으로 불문사 대마도답사는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이번 답사는 내가 미처 다녀오지 못한 곳과 새로운 풍경을 봤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으며, 카미자카에 다시 갈 명분을 만들어 줬다. 그리고 12월 30일, 이 때의 기억을 총 5부작으로 남기면서 지금까지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과 인사를 끝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불문사 대마도답사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