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나의 발자취/여행

백제의 마지막.. 부여답사기(2)-능산리

북쪽의완행열차 2008. 4. 30. 22:32

맨 먼저 도착한 곳은 능산리고분군,능산리절터로 능산리고분군은 백제시대 후기의 왕릉들이 밀집해있다

 

모형전시관서 해설을 요청했는데 일본인이 해줘서 한국발음이 조금 엉망이여서 일어하고 섞어서 해달라고 해서 설명듣고 다른 사람이 다시 해줬다. 물론 일본인에게 일어로 정중히 인사했구....

 

왕릉 모형중 일부분... 후래시를 안터쳐서 흔들렸다

 

 

능산리 절터란다...

 

능산리 절의 복원모형... 실제로 지금도 복원중이다

 

능산리 절터를 간단히 설명하면 백제 위덕왕14년인 567년에 관산성(지금의 옥천부근)서 전사한 성왕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절로 660년에 백제와 함께 망한 사찰로 대표적인 유물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와 백제 창왕명 석조 사리감(국보 288호)이 있다

 

인면조신 인면수신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통(짐승몸통)이란다

 

세부모습...

 

나오니 덥다!!

 

왕릉원 모형중 한군데로 천장의 무늬가 제법 아름답다

 

백제가 불교를 숭상해서인지 연꽃무늬가 인상적이다

 

또 다른 벽화... 정말 백제의 벽화는 소박하면서도 예술적이다(고구려 벽화는 파워풀하면서도 사실적임)

 

백제를 캐막장으로 만들다못해 말아먹은 의자왕(우측)과 그의 아들인 부여 융(좌)의 무덤... 시체가 썩어서 북망산의 흙을 가지고 가묘형식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 의자왕도 초기에는 정치도 잘하고 대야성(합천)까지 뺏을 정도였지만 말기에 간신들에게 빠져서 나라를 혼란에 빠쳤다고 한다(하긴 삼천궁녀전설까지 있으니까)

 

부여융의 무덤... 그나마 아비가 말아먹은 나라를 재건하려다가 실패했기에 더욱 안타깝다.

 

백제를 망하게한 역적인 의자왕... 초기의 신념대로만 했어도 백제는 더 오랫동안 영화를 누렸을것이다

 

왕릉(?) 하나가 이렇게 크지만 신라에 비하면 양반수준이다

 

이놈이 신라왕릉으로 무덤이 아니라 언덕이라 해도 될정도로 스케일이 크다

 

그래도 왕릉이라고 다른 무덤들에 비해 큰편이다 나도 죽으면 무덤을 저렇게 해달라고 할까 아니면 신라처럼 초대형으로 해달라고 할까??

 

대왕지렁이 한마리가 더운날씨속에도 기어가고 있다 왕릉에 사는 녀석이라 저놈도 큰가??

 

능산리고분군 전경.. 사실 촬영하기 좋은곳에 표시가 있어서 쉽게 좋은 사진을 많이 찍을수 있다

 

버스 정류장 대전처럼 번호가 있는게 아니고 부여홍보와 부여의 산물을 소개해주고 있다 가운데 백제왕도 부여라고 씌여진 곳에 있는게 정림사지로 나중에 소개하기로 한다 

 

능산리 절터.. 절 이름이 무었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읍내서 부소산 등산과 낙화암을 보기 위해 올만에 비빔밥을 먹고 가운데 된장찌개에다가 밥 한그릇 추가해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부소산을 오르기로 했다

 다음편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