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나의 발자취/여행

백제의 마지막.. 부여답사기(5)- 백제역사문화관, 부여박물관

북쪽의완행열차 2008. 6. 8. 23:40

내가 처음엔 택시타구 궁남지 가려고 했지만 기사님께서 궁남지는 볼께 없다구 규암면에 있는 백제역사문화관을 추천해주셨구 왕복 2만원을 불러서 속는 셈 치고 가보기로 했다

 

백제의 최전성기때의 판도 아무래두 부여가 백제다 보니 백제의 최전성기때를 표현한듯 하다.. 이때까지만 해두 신라는 가야와 똑같거나 비등비등한 힘이었구...

 

백제의 악기들....  거문고와 북을 빼곤 듣도보도 못한 악기들이었다.. 북도 오늘날과는 다르게 생겼구...

 

정림사지 탑의 모형과 금(동)용봉대향로.. 대향로가 연못 중앙에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도 없잖아 준다

 

백제인들의 발자국 흔적 공룡의 발자국 흔적은 봤지만 사람의 발자국 흔적은 이때 처음봤다.. 근데 걸음걸이가 약간 八자 형태군ㅋ

 

대장간의 모습... 오늘날로 치면 금속공장에 해당되는 곳으로 제련술이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시골장의 모습과 비슷한 백제시대 장터의 모습 지게가 저때도 쓰였던 모냥이다

 

아랫사진들은 백제 무덤의 변천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계단식 돌무지무덤으로 대표적으로는 석촌동 백제고분군이 있으며 이 고분군 중에는 백제 전성기를 이룬 근초고왕의 무덤도 있다고 한다 특징점은 크기가 크며 계단형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 무덤은 백제가 고구려계통이라는 주장에 뒷받침 하기도 한다

 

굴식 돌방무덤.. 대표적으로 공주 무령왕릉이 있으며 다인용으로 쓸 수 있다는 점과 벽면에 벽화를 그리는 경우도 있어서 벽화를 보고 백제인들이 예술성을 짐작할수도 있어서 좋지만 도굴이 쉽다는 약점이 있다   참고로 사비백제의 굴식 돌방무덤은 작으면서 세련�다고 한다....

 

독무덤 항아리 2개를 연결한 무덤으로 이시대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구덩식 돌방무덤으로 나도 이러한 형태는 처음 알았다...

 

백제탑의 변천과정...

 

이 탑은 전북 익산시 소재의 미륵사지 석탑의 완전한 모습을 나타낸 복제품이다.

 

제가 무덤쪽은 조금 알겠는데 탑은 전혀 몰라서 설명 못드리는 점 ㅈㅅ히 여깁니다(사학과 학생이 되서는 엄청 쪽팔림)

 

 

 

 

그렇게 다 보고 나서 택시기사에게 배추잎 2장 주고 부여박물관 앞에서 내렸다  아랫 사진은 내가 탔던 택시로 이때 출고한지 1달밖에 안된 새차였었다..

 

국립 부여박물관의 외경... 그저 평범하게 생겼다

 

연표... 역사공부하기 전에 이 연표를 다 외우려고 하는 꼴통급이 있는데 그러면 역사하고 담을 높이쌓는 셈이다 참고로 내가 선호하는 역사공부는 외우는거 보다 이해하는 방식과 직접 발로 뛰면서 현장학습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그렇다 보니 현장학습을 가장한 다른목적 여행도 몇번 있었다)

 

백제의 결정체인 금동대향로 출토모습... 겨울철에 조심조심 손으로 팠다는 이야기에서 사학자(고고학자)의 정성이 드러난다.. 유물훼손을 막기위해 자기손을 희생하며 발굴하던 학자의 정성이 있기에 백제금동대향로가 완전한 상태로 있는것이다

 

사택지적비...

 

이 유물이 백제금동대향로 오리지널로 원래 촬영금지를 몰래 찍었다(플래시 안터쳤음)

 

서산 마애삼존불로 일명 백제의 미소라고도 하며 태양위치에 따라서 미소가 틀려진다

 

불상의 명칭

 

보살의 명칭 보살은 쉽게 말하자면 부처님 비서(무식한 표현으로 하면 부처님 시다바리 내지 꼬봉)에 해당한다.

 

제 2의 의자왕 납시오!! 백제왕의 복장을 입고 촬영했다

내가 왜 의자왕이라고 했냐면.... 말해주기 싫다ㅋㅋ

 

담편서 마지막 답사지인 정림사지가 나오며 조만간 완필할듯 합니다.. 이것 말구도 밀린 스토리가 많은데...